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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정보

펫로스 증후군 극복하기

일주일 만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그동안 블로그를 관리할 여유도 없었고, 글을 쓸만한 정신도 없었다.

그 이유는 일주일 전에 나와 10년을 함께했던 반려견과 이별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러운 내 딸

다른 강아지들 보다 노화가 조금 빠르게 온 것 같은 느낌은 받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예전보다 잠을 더 많이 자고, 짖는 횟수가 줄어든것은 느꼈지만 이렇게 빨리 가버릴 줄은 몰랐다.

밥도 잘먹고, 산책도 잘하고, 건강한 변을 봤기 때문에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쩌면 늘 당연히 함께 했기 때문에 소홀했을 것이다.

너무나 미안한것이 많고,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일찍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닌가 죄책감이 들었다.

며칠 동안 굶고, 울고, 그리워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힘들고 눈과 머리가 깨져버릴 듯이 아팠다.

강아지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서 너무 괴롭고 슬펐다.

미안하다, 고맙다, 괜찮다, 편하게 가라고 계속 말해주면서 강아지를 보내주던 그 순간이 자꾸 아른거린다.

집, 직장, 여행 등 어딜가든 늘 함께했기 때문에 허전함이 너무 컸다.

너무 힘들어서 출근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기만 했다.

아직까지도 집에 남아있는 강아지의 냄새, 털, 물건들을 계속 어루만지면서 나도 같이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이틀 뒤에 출근을 해서 일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쏟고,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펫로스 증후군을 알게 됐다.

펫로스 증후군은 함께 지내던 반려동물의 죽음 때문에 우울함과 상실감을 느끼는 증상이라고 한다.

물론 반려동물의 죽음때문에 슬프고 우울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증상이 몇 달 이상 오래가면 펫로스 증후군이라고 한다.

 

 

펫로스 증후군 극복하기

 

반려동물과 이별한 뒤 가장 슬픈 이유는 나처럼 반려동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내가 좀 더 잘 돌봐주었다면, 아플 때 빨리 병원에 데려갔다면, 더 좋은 음식을 챙겨주었다면 더 오래 살았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나를 너무 힘들게 한다.

그리고 반려동물의 빈자리가 너무나도 커서 허전하고, 쓸쓸하고, 집안이 너무 고요하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을 혼자서 감당하는 것보다 주변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강아지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 내가 강아지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는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맙게도 그런 나를 위로해주고, 내가 강아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이야기해줬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고, 강아지의 죽음에 대해 계속 이야기를 할수록 마음이 진정이 됐다.

그럴수록 죄책감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리고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충분히 느끼고, 이야기하면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울고 싶을 때 실컷 울고, 하루 종일 사진을 보고 그리워하면서 이제 내 곁에 없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억지로 참으려고 노력하고, 부정할수록 펫로스 증후군이 될 확률이 높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족같이 함께 지내던 반려동물의 빈자리가 너무 크고 허전한 마음에 바로 다른 반려동물을 데리고 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같은 종, 같은 색, 같은 성별의 반려동물에게 먼저 키우던 반려동물과 같은 이름까지 지어주는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고 한다.

새로 맞이한 반려동물에게 더 좋지 않은 집착을 하게 된다고 한다.

죽은 반려동물에게 충분한 애도를 표하고, 마음이 진정된 후에 최대한 늦게 새로운 반려동물을 데려오는 것이 좋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

먼 훗날 다시 반려동물의 죽음에 슬퍼할 것을 생각하면 너무 두려운 일이다.

 

그리고 죽은 반려동물의 흔적을 빨리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강아지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서 강아지의 흔적들을 보며 눈에 띄는 것들을 바로 갖다 버렸다.

눈에 보이면 더 슬플 것이라는 생각으로 강아지의 배변판, 밥그릇, 방석 등을 모두 봉투에 담아 버렸다.

하지만 너무 아쉬운 마음에 강아지가 입던 옷과 장난감, 간식 등의 일부는 서랍 속에 간직해뒀다.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억지로 부정할 필요가 없다.

나는 천천히 정리하기로 했다.

 

반려동물과의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 중 또 다른 한 가지는 반려동물이 없어서 좋은 점도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강아지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살아있는 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이틀 전부터 이 방법으로 슬픔을 많이 덜어냈다.

강아지가 없으니 집에 털이 날리지 않고, 알레르기도 없어지고, 대소변 냄새도 나지 않아서 좋다.

이제부터는 외출, 여행도 맘껏 할 수 있겠다.

친구들과 저녁 모임을 나가도 강아지가 집에서 기다리지 않으니 늦게까지 실컷 놀 수 있다.

매일 산책시키고, 빗질해주고, 목욕시키고, 화장실 청소하느라 소비했던 시간을 나를 위해 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억지로라도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받았던 강아지의 사랑만큼 감사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만 내가 건강해질 수 있고, 우리 강아지도 그걸 바랄 것이다.

 

아직도 집에서 강아지 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가끔씩 강아지를 본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하지만 점점 괜찮아지고 있다.

그동안 함께 추억을 쌓으면서 찍었던 강아지 사진들을 인화해서 집안 곳곳에 액자를 세워놨다.

그래서 허전함이 조금 덜해진 것 같다.

강아지의 물건들을 아직 다 버리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조금씩 정리를 해야겠다.

우리 강아지가 편하게 하늘로 갈 수 있도록 내가 놓아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다.

 

가끔은 소홀하고, 짜증내고, 제일 싫어하던 목욕을 시켜도 늘 나만 바라보며 사랑해 주던 우리 강아지에게 마지막으로 해줬던 말이 기억난다.

분리불안증이 심해서 나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늘 내가 시야 안에 들어와 있어야 안심하던 우리 강아지에게 

천국에 가서 나만 기다리지 말고 친구들과 재밌게 뛰어놀고, 맘껏 산책하고, 맘껏 냄새 맡고 다니라고 말해줬다.

나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까 봐...

반려인보다 먼저 간 반려동물이 하늘에서 반려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죽음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라고 표현하는것 처럼 우리 강아지도 무지개 다리를 깡충깡충 뛰어서 무사히 하늘에 도착하기를, 아프지 말고 행복하기를 빌고 있다.

 

나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이별한 후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이날이 마지막 산책이 될줄은 몰랐다. 사랑해 우리 딸 너부리